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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환상문학’ 이론 정립한 인문주의 선구자 토도로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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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변문학 취급을 받던 환상문학을 어엿한 문학연구 대상으로 끌어올린 프랑스의 문예이론가이자 역사 연구가 츠베탕 토도로프(사진)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77세. 일종의 퇴행성 신경질환인 다계통위축증이 사인이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프랑스 문예이론가 77세로 별세
『환상문학서설』 등 숱한 명저 남겨

1939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태어난 토도로프는 고국의 공산독재를 피해 20대 중반의 나이에 프랑스로 망명했다. 국내에도 번역·소개된 『환상문학서설(Introduction à la Littérature Fantastique)』(일월서각)이 그가 문학이론 분야에 남긴 최대 업적이다. 문화인류학의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 연구방법에 입각해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고와 행동 패턴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아라비안 나이트』, 카프카의 『변신』 같은 작품들을 집중 분석했다. 하위 장르문학으로 평가받던 환상문학에 어엿한 ‘문학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조주의 문예이론가 롤랑 바르트의 제자였던 그는 문학이론가로 출발했지만 80년대부터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의 후유증, 타자 문제 등으로 시선을 돌렸다. 85년 저서 『미국의 정복: 타자의 문제(The Conquest of America: The Question of the Other)』에서 “미국 대륙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은 유럽인들과 달리 ‘타자 의식’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현실인식과 이성적 추론을 교란시키는 침략자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는 프랑스 사회가 당면한 두 가지 어려움으로 테러의 위협과 함께 정부의 과잉 대응을 꼽은 다음 “중동의 한 도시를 체계적으로 폭격하는 것이 프랑스 성당에서 누군가의 목을 따는 것보다 덜 야만적인 게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지난해 7월 프랑스 북부의 한 성당 안에서 이슬람국가(IS) 추종자가 신부를 참수한 사건에 대한 언급인데, 서방의 중동 폭격이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롤랑 바르트 밑에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73년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다. 두 번 결혼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남겼다. 『문학이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텍스트들』(1966), 『산문의 시학』(1971), 『구조주의란 무엇인가?』(1977)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십 권의 책을 출간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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