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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에베레스트 오른 첫 여성, 다베이 준코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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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75년 여성 첫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한 일본 산악인 다베이 준코(田部井淳子·사진)가 20일 암으로 별세했다. 77세.

1975년 35세 때 부상 딛고 정복
여성 첫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도

NHK 등 일본 언론은 이날 다베이가 사이타마(埼玉)현의 한 병원에서 복막암으로 숨졌다고 22일 보도했다. 장례는 친지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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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베이의 등산 인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 39년 후쿠시마(福島)현 미하루마치(三春町)에서 태어난 다베이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도치기현의 나스연봉(那須連峰)을 오르면서 등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

60년대 쇼와여자대학 영문과 진학을 위해 도쿄에 홀로 상경한 다베이를 외로움에서 구원해준 것도 등산이었다. 타향살이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다베이는 주말마다 닥치는대로 산에 오르며 마음을 치유했다.

64년 대학을 졸업한 다베이는 사회인 산악회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산악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69년엔 여성 산악인들만으로 꾸려진 해외 원정대를 목표로 여성등산클럽을 설립하고, 이듬해 해발 7555m인 네팔의 안나푸르나 3봉 등정에 성공했다.

다음 목표는 에베레스트였다. 35세의 다베이는 75년 원정대 부대장으로서 대원 15명과 함께 원정길에 올랐다. 등반 도중 대원들이 차례로 고산병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상 부근에선 눈사태에 휘말리면서 다베이는 이틀 동안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근육을 크게 다쳤다. 원정대장은 하산을 결정했지만 다베이는 정상에 도전했고, 그 결과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세계 최초의 여성이 됐다.

이후 등반을 계속한 다베이는 92년 유럽 최고봉인 러시아 옐브루스산(5642m) 정상에 서며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정했다. 다베이가 평생 등정한 산은 세계 56개국 159개에 달한다. 90년엔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의 국제기구 ‘히말라얀 어드벤처 트러스트’ 일본 지부를 설립한 이래 산악 환경 운동을 펼쳐왔다.

다베이는 죽기 직전까지 등반을 멈추지 않았다. 60대를 넘어선 나이에도 매년 5~6회의 해외 원정을 다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이듬해부터는 피해지역 고등학생들과 함께 매년 후지산(3776m)을 등반했다.

2012년 암 진단을 받고 나서도 그의 등반은 계속됐다. 지난 7월 , 학생들과 함께 후지산 3000m 지점까지 오른 것이 다베이의 마지막 등반으로 기록됐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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