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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만에…‘임실치즈의 아버지’진짜 한 국인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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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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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 신부는 74년 지학순 주교 구속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됐다. [사진 명인문화사]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통하는 지정환(85·본명 세스테벤스 디디에) 신부가 4일 법무부로부터 국적 증서를 받으면서 법적으로 진짜 한국인이 됐다. 한국에 온 지 57년 만이다.

지정환 신부, 법무부 국적증서 받아
지역경제, 장애인 복지 기여한 공로
2002년엔 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
“좋은 설 선물…한국과 영원히 할 것”

지 신부는 벨기에 귀족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이듬해 한국행 배에 올라 첫 부임지인 전북 부안의 부안성당에 도착했다. 주임신부인 그는 부안군청의 간척사업 허가를 받아 축구장 140개 규모의 간척지(약 100만㎡)를 일궜다. 이를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67년 두 번째 부임지인 전북 임실에선 농민들의 자활 기반 마련을 위해 치즈 공장을 세웠다. 2년 넘게 실패를 거듭한 뒤 이탈리아 견학까지 다녀온 끝에 69년 한국 최초로 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농민들이 정성껏 만든 임실치즈는 서울의 특급호텔로 유통망을 넓히며 승승장구했다. 72년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 국내 최초로 들어선 피자 가게에 모차렐라 치즈를 공급하기도 했다.

현재 임실치즈가 지역 사회에 끼치는 경제효과는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 임실치즈피자 프랜차이즈 업체만 20여 개, 임실치즈를 음식에 쓰는 브랜드만 70여 개다.

지 신부는 70년대 유신체제 저항 운동에 앞장섰다가 강제 추방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임실치즈를 만든 외국인 신부”라는 보고를 듣고 추방 명령을 거뒀다고 알려진다. 5·18 민주화운동 때는 시민군에게 나눠 줄 우유를 트럭에 싣고 혼자 광주로 내려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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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소양면의 자택 ‘별 아래’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는 지정환 신부. [사진 명인문화사]

그는 70년대 초반부터 휠체어 신세를 졌다. 오른쪽 다리의 신체 기능이 조금씩 마비되는 병(다발성신경경화증)을 앓아서였다. 병 치료를 위해 벨기에로 돌아갔다가 84년 귀국해 중증 장애인의 뒷바라지에 헌신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에 장애인 재활센터 ‘무지개 가족’을 설립하고 중증 환자들의 욕창 치료와 운동 재활에 힘썼다.

2002년 호암상 사회봉사상으로 받은 상금 1억원과 사재를 털어서 ‘무지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2007년부터 매년 장애인 학생 20~3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지금은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별 아래’라는 집에서 장애인·봉사자들과 같이 산다.

이날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적 증서 수여식에서 천노엘(84·오네일 패트릭 노엘) 신부도 지 신부와 함께 한국 국적을 갖게 됐다. 아일랜드인인 천 신부는 지적 장애인·봉사자가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가족형 거주시설 ‘그룹홈’을 30여 년 간 운영해 왔다. 국적법은 2012년부터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특별귀화를 허가하고 있다.

이 규정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인요한(57)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등 7명이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지역 경제 발전과 장애인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해오신 지 신부님과 천 신부님께 국민을 대표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 신부는 본지와 e메일 인터뷰에서 “나를 한국사람으로 생각해줘서 고맙다. 내게는 정말 좋은 설 선물”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 “첫 부임지인 부안은 첫 사랑이고 두 번째 부임지인 임실은 내 고향이다. 신랑·신부가 결혼하면서 영원히 함께 하자고 약속하듯 나 또한 한국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설을 맞아 장애인 및 소외계층에겐 “지금 할 수 없는 것, 없어진 것에 대해서 슬퍼하지 말고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길 바란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서 세상으로 더 밝게 뻗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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