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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스푼 5] 세계를 매혹시킨 ‘향신료의 예술’ 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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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기자

강남통신 ‘레드스푼 5’를 선정합니다. 레드스푼은 강남통신이 뽑은 맛집을 뜻하는 새 이름입니다. 전문가 추천을 받아 해당 품목의 맛집 10곳을 선정한 후 독자 투표와 전문가 투표 점수를 합산해 1~5위를 매겼습니다. 이번 회는 커리입니다.

배합 향료 수와 비율 따라 다양한 맛
인도 현지선 양고기 커리 가장 선호
18세기 영국에 전파…카레는 일본식

커리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종주국인 인도 말고도 인근 국가, 중동,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됐죠. 재료와 향신료 배합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게 ‘천의 얼굴’을 가진 커리의 매력입니다. 강남통신 맛집 전문가와 독자가 함께 찾아낸 커리 맛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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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에베레스트
네팔인 사랑방서 한국인 맛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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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도 좋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와 바빠도 친절한 스태프 때문에 자주 찾게 되는 곳.” (독자 이미정)

 지난 13일 창신동 ‘에베레스트’는 평일 낮인데도 널찍한 홀을 가득 채운 손님들로 붐볐다. 에메랄드색 페인트로 칠한 벽에는 네팔에서 가져온 장식품과 그림 액자가 빼곡히 걸려 있었고, 곳곳에 향을 피운 제단과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벽걸이 TV에서는 인도와 네팔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구룽 대표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안으로 들어가 네팔 전통 모자를 쓰고 나왔다. “네팔에서는 손님이 오면 환영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모자를 써요. 집 현관에 꽃병을 두는 것도 누군가를 반긴다는 뜻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장수 네팔 레스토랑 에베레스트의 주인이다. 한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그는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한국에는 아직 제대로 된 네팔 음식점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요리 솜씨 좋은 아내와 상의해 현지 메뉴 중에서도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골라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처음엔 고국 네팔 출신 손님 위주의 레스토랑이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네팔이나 인도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을 겨냥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영업하면서 맛있다는 입소문이 났고 단골이 늘면서 요즘은 한국 손님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구룽 대표는 네팔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리려면 맛과 깔끔한 분위기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기존의 네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식기부터 주방 위생, 서비스까지 모든 걸 직접 총괄했다. 네팔 현지에서 쓰는 묵직하고 커다란 쟁반과 접시는 사이즈를 줄이고 두께를 얇게 한국 식당의 앞접시처럼 만들었다. 숟가락과 포크는 놋으로 만들어 네팔 전통 문양을 덧댔다. 밀크티 전용 잔도 장만했다. 밀크티는 네팔 사람들이 하루에 9~10잔씩 마시는 음료다.

 메뉴는 커리와 단품 요리, 네팔식 음료와 디저트가 메인이다. 구룽 대표는 “네팔 외에 음식 문화가 비슷한 인도·파키스탄·티벳 등 주변 국가의 전통 음식도 조금씩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현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커리는 양고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치킨 커리를 가장 많이 찾는다. 치즈·크림·토마토로 맛을 낸 부드럽고 달큼한 맛이다.

○ 대표 메뉴: 커리 7000~9000원대, 볶음국수 6000원, 난과 로띠 빵 2000~3000원대
○ 운영 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
○ 전화번호: 02-766-8850
○ 주소: 창신동 148-1
○ 주차: 불가

2위 아그라
『천일야화』 속 한 장면 같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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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독특한 곳에서 편안하게 회식할 때 자주 간다. 인도 궁전에 와있는 것 같은 인테리어가 압도적이다.” (독자 최명준)

 ‘아그라’는 커리의 종주국인 인도 북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이다. 뉴델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인도의 수도였던 도시다. 인도를 여행하며 정통 커리의 매력에 흠뻑 빠진 김휘규 사장은 인도의 맛과 분위기를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2008년 이태원동에 1호점을 열었다.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 위치한 아치형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벨벳 커튼, 샹들리에, 거울과 앤티크 의자로 가득한 『천일야화』 속 한 장면 같은 실내가 등장한다. 커리는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맵기와 향신료 강도를 조절했다. 크림을 넣어 부드러운 ‘머커니’ 타입, 시금치를 넣어 녹색이 감도는 ‘팔락’ 타입, 토마토와 매운 향신료를 넣은 ‘빈달루’ 타입 등 선호하는 재료에 따라 고를 수 있다.

○ 대표 메뉴: 커리는 전부 1만8700원, 클래식 난 20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 전화번호: 02-797-7262
○ 주소: 이태원동 172-2 덕흥빌딩 지하 1층
○ 주차: 건물 내 주차장 이용

공동 3위 강가
가장 오래된 인도 레스토랑 … 커리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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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고 개운한 커리 소스가 일품이다.” (독자 조현희)

 인도어로 갠지스강을 뜻하는 ‘강가’는 2000년 신사동에 문을 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 레스토랑이다. 장식은 배제하고 한두 가지 인도 장식품으로만 포인트를 준 강가 역삼점은 모던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천장이 높고 널찍해 웅장한 느낌을 준다. 메뉴는 인도 전역을 어우르는 전통 요리를 골고루 선보이는데, 그중에서도 무굴왕조 시대 때 왕족이 즐겨 먹던 음식이 특히 유명하다. 커리는 채소·고기·해산물 중 고를 수 있고 종류는 서른 가지가 넘는다. 주방장 특선 커리가 그때그때 달라지니 추천받아 주문하는 것도 좋다. 항아리에 숯을 넣은 인도식 화덕에서 구운 탄두리 치킨도 별미다. 20가지가 넘는 마살라(혼합 향신료)와 요구르트에 하루 이상 푹 재워 굽는데 독특한 풍미와 개운한 끝맛이 좋다.

○ 대표 메뉴: 커리 2만원대, 탄두리 치킨 2만50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 전화번호: 02-2005-0610
○ 주소: 역삼동 679 GS타워 지하1층
○ 주차: 건물 내 주차장 이용

공동 3위 페르시안 궁전
향신료 강하고 독특한 풍미의 이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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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셰프, 한결같은 맛.” (독자 현영은)

 2002년 성균관대 근처에 문을 연 ‘페르시안 궁전’은 중동 지역의 미식 국가로 유명한 이란식 커리를 판다. 페르시아 시대의 타일과 카펫으로 꾸민 이곳은 1993년 한양대 의대로 유학 왔던 오너 셰프 샤플이 요리하는 곳이다. 샤플 셰프는 “주말마다 친구들을 불러 커리 파티를 하고 이란 음식을 선보이는 게 취미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향신료가 강하고 독특한 풍미의 이란 음식을 변형해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커리 맛을 찾아냈다. 샤플 셰프는 “처음에는 식당을 냈다니까 신기해하는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요즘은 지방에서도 찾아온다”며 웃었다. 페르시안 궁전에서는 순한 맛부터 낚지볶음보다 2~3배 매운맛까지 커리 맛의 강도를 직접 정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커리는 양고기나 치킨 말고도 통닭커리, 칠면조커리 등 독특한 메뉴가 있다.

○ 대표 메뉴: 커리 7000~9000원대, 후무스 8000원, 쉬라지 샐러드 5000원
○ 운영 시간: 낮 12시~오후 10시
○ 전화번호: 02-763-6050
○ 주소: 종로구 명륜2가 121-1 1층
○ 주차: 성균관대 내 주차장 이용 시 할인

5위 타지
인도 현지 레시피·재료 그대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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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나 조리법을 잘 몰라도 친숙한 맛.” (독자 지혜정)

 2000년 오픈한 정통 인도식 커리 레스토랑이다. ‘타지’라는 식당 이름은 ‘테이스트 오브 인디아’의 준말이다. 널찍하고 채광이 좋고 조명과 식물 같은 요소로 포인트를 줘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인근 직장인과 비즈니스 미팅하러 오는 단골이 많다. 메뉴는 현지에서 쓰는 레시피와 재료를 그대로 재현했다. 인도 콩과 감자를 곁들인 ‘알루 카 찻’ 샐러드, 인도식 피클 ‘믹스 아짜르’, 매운 과자 ‘빠빠드’, 튀김 만두 ‘사모사’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가 있다. 커리는 부드럽고 고소한 치즈 커리가 특히 인기다. 캐슈넛 같은 견과류나 코코넛 크림을 더해 진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다이어트에 좋은 노란 콩 채소 커리도 인기다. 바비큐도 이 집 대표 메뉴다. 탄두리 화덕에 구운 양송이 바비큐, 감자튀김 바비큐 같은 채식 바비큐 메뉴가 이색적이다.

○ 대표 메뉴: 커리 1만원대, 바비큐 1만~2만원대
○ 운영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 전화번호: 02-776-0677
○ 주소: 명동1가 1-3 YWCA연합회 지하 1층
○ 주차: 건물 내 주차장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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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뜻하는 인도어 카리의 변형
인도에서 네팔·이란·영국 등 퍼져

향신료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복자와 미식가를 매혹시켰다. 향신료 때문에 전쟁까지 했을 정도였다. 인도인들은 3000년 전부터 ‘향신료 종결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커리를 주식으로 먹었다. 그게 이웃 국가까지 전해져 지금은 네팔·파키스탄·방글라데시에서도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커리는 인도어로 ‘소스’를 뜻하는 ‘카리’에서 변형된 단어다. 고기나 채소 같은 재료에 수십 가지가 넘는 향신료 가루 마살라(Masala)를 넣고 푹 끓여 만드는 음식이다. 한국에선 마살라보다 커리 파우더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레드스푼 맛집 1위를 차지한 창신동 ‘에베레스트’의 구룽 대표는 “같은 커리라도 향신료를 배합하는 비율에 따라 지역마다 맛이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인도와 네팔 스타일이다. “인도 사람들은 더 매콤하고 기름기 있는 스타일을 좋아하고 네팔 사람들은 덜 자극적이고 담백한 맛을 선호한다”고 했다.

 커리 하나에 향신료 두세 가지, 많게는 열 가지가 넘게 들어가는 게 오묘한 맛의 비결이다. 향신료의 역할은 각기 다 다르다. 후추·고추·생강·겨자는 매운맛을 담당한다. 이국적이고 독특한 풍미를 결정하는 건 회향·정향·육두구·고수다. 커리 하면 흔히 떠오르는 노란색은 울금·사프란·진피에서 우러나온 색깔이다.

 특정 지역의 전통 음식을 만드는 ‘정통’ 마살라 배합은 따로 있다. 인도 요리 만들 때 가장 대중적으로 쓰는 가람(Garam) 마살라는 매운맛 나는 향료만 묶은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인도 남부에서는 후추와 겨자씨, 고추씨를 배합한 삼바르(Sambar) 마살라가 유명하다. 인도 북부에는 화덕에 구운 치킨을 요리할 때 쓰는 붉은색 향료만 모은 ‘탄두리’(Tandoori) 마살라가 있다.

 커리가 소스라면 함께 곁들이는 주식은 쌀밥이나 빵이다. 찰기가 없는 쌀에 사프란 열매를 넣어 노랗게 지은 밥은 고급에 속한다. 평소에는 사프란을 넣지 않고 그냥 흰 쌀밥을 먹는다. 빵 종류는 두 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난’이 고급이고, ‘로띠’가 가정식이다. 우유·달걀·이스트를 섞어 발효한 뒤 화덕에서 굽는 난은 손이 많이 가서 빵집에서 사 먹는다. 집에서는 보통 부재료를 넣지 않고 밀가루 반죽만 프라이팬에 구운 로띠를 먹는다.

 구룽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현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커리 재료는 양고기다. 채식주의자도 많아 채소 커리도 즐겨 먹는다. 렌틸콩이나 양파·고추 같은 계절 채소 커리 레시피가 다양하다.

 KBS ‘요리인류’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욱정 PD는 “현지 사람들 못지않게 커리를 좋아하는 나라가 영국”이라고 말했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던 18~19세기에 인도에 머물던 영국 상류층의 영향이다. 영국인들은 런던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그리워했고, 이후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던 영국인이 인도 쌀과 마살라를 런던에 가져오며 커리의 ‘영국상륙작전’이 시작됐다. 일본인의 커리 사랑도 지극하다. 고기나 해산물보다는 양파·감자 같은 채소를 약한 불에 오래 끓여 만든다. 이름도 커리의 일본식 발음인 ‘카레’라고 변형해서 부른다. 소스를 밥 위에 끼얹어내는 카레라이스 형태로 즐겨 먹는다.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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