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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일본 천황제, 미국과 충돌 불가피”…태평양전쟁 발발 예언한 이승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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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이승만 대통령. [중앙포토]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
이승만 지음, 류광현 옮김
비봉출판사, 322쪽
1만3500원

이승만(1875~1965)은 초대 대통령 이전에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였다. 일찍이 일본 제국주의의 세계 제패 야욕을 파악하고 신문 기고와 강연으로 미국 주류사회에 이를 알렸다. 이승만은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39년에서 41년 봄 사이에 일제의 본질을 담은 이 책을 영어로 썼다. 이 책에서 그는 당시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일본이 세계 제패의 야욕이 있으며 이를 이루려고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일본의 준동을 ‘아마겟돈’이라고 부르면서 미·일 전쟁을 막으려면 미국이 먼저 힘으로 일본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의 국제관계 인식은 정확했다. 동양의 미카도(일왕의 별칭. 한자로 제[帝]나 어문[御門]이라고 씀. 당시 미국 일부에선 일본을 미카도 제국이라는 별칭으로 불렀음)와 서양의 파시스트와 나치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 때문에 전쟁의 불길이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들은 국내를 고도로 기계화시키면서 전 세계에 군림하는 것이 자신들의 운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했다. 특히 일본은 일왕을 신격화하는 ‘천황주의’를 앞세워 그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침략을 합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만은 이 때문에 미·일 전쟁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이를 산불에 비유했다. “연기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산불은 저절로 꺼지지 않는다. 불길은 하루하루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미·일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한 근거는 이렇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에 승리하자 일부 서양 열강과 연합해 아시아를 지배하는 ‘대동아합방’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일왕 중심의 전체주의에 대립하는 민주주의 미국은 이들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해군 고위관계자가 무력으로 미국을 누르는 내용의 『일·미 전쟁 미래기』라는 책을 썼다. 더 나아가 세계정복의 야욕을 담은 ‘다나카 각서’도 작성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쓸 당시 일본은 엄청난 홍보비를 들여 미국의 눈을 가렸다. 이승만은 1954년 발행된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일인이 미국의 신문과 잡지를 다 연락해서 매년 백만 달러 이상을 미국에 선전비로 쓰면서 미국 전체의 눈을 가리고 자기 말만 가져다 보이고 들려주는데 내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하려 한다는 내용의 책인) 『일·미 전쟁 미래기』를 말하면 모두 비웃고 일·미 간에 악감을 자아내어 한국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한다는 지목을 받고 지냈던 것이다.”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이지 않은가?

 이승만의 예언은 1941년 12월 7일 일제가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적중했다. 홍보 뒤에 가린 군국주의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가 지적한 전체주의의 본질은 지금 되씹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 새로 번역하며 붙인 ‘일본 천황전체주의의 기원과 실상’이라는 부제가 책의 성격을 요약한다. 원제는 『Japan Inside Out』.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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